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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양동은 낙양시용문석굴용문산북쪽에 있으며 북위
경명원년(서기500년)에 공사 시작했으니 남동 중동 북동 셋이나 있다
빈양중동은 북위경명원년부터 정광4년(서기500—523년)까지 모두 24년 걸려 완공된 동굴로 화려하고 빛난 모습으로 용문석굴에서 으뜸으로 뽑혔다.이석굴은 선제원격(元恪)은 효문제 원홍과 문소황태후를 위해 지은 동굴중의 하나이다.동굴의 평면은 말발굽으로 보이고 穹隆적 천정이며 깊이가 12m,널비가 10.9m,높이가 9.3m이다.정면벽에 주불인 석가모니좌상을 조각했으며 불상얼굴은 길고 청수하며 자상하고 미소를 짓고 있다.좌우에 가엽과 아난 두 제자,무수 보현 두보살이 각각 있다.가엽은 성숙한 모습이고 아난은 활발한 모습이니 살아있게 잘 조각됐다.불상의 옷은 북위 조기의 오른어깨 드러난 것이나 通肩적 스타일로부터 褒衣博带적 스타일로 바뀌었다.이것은 효문제가 실시한 汉化政策이 석각예술에 나타난 것이다.남북쪽벽에 선 불 하나와 보살 두 개 각각 조각됐다.불이나 보살은 몸매가 호리호리하고 표정은 온화하고 날아갈 듯이 잘 조각됐으니 북위 만기에 유행된“秀骨轻像”의 전형적인 대표이다.지면에 연화무늬로 장식됐으니 연못을 상징했다.동굴천정중간에 부각으로 활발하게 핀 큰 연화가 조각됐고 주위에 八身伎乐과 两身供养天에다가 流苏帷幔으로 연화뚜겅을 이룩했다.동굴입구내면벽 양측에 대형부각이 있는데 “维摩变”、“佛本生이야기”、“帝后礼佛图”와 “十神王像” 모두 네겹이 있었지만“帝后礼佛图”가 1943년도에 도굴당해 외국에 보내졌다.북동과 남동은 북위시기 공사가 시작됐지만 당나라에 와야 완공됐다.
빈양북동은 북위시기 공사 시작됐고 당나라초기(서기641--650)에 완공됐다.주불은 아미타불이고 화염무늬광배의 빛이 복잡하고 생동하다.동굴입구양쪽에”용머리기둥”은 북위 사마인 김용 무덤에서 출토된 기둥의 스타일과 같으니 북위 만기의 작품으로 추측됐다.
빈양남동은 북위시기에 공사 시작됐고 수나라 내지 당나라 초기(서기
595-618)에야 완공됐다.주불은 아미타불이니 얼굴은 살찌고 입술은 두텁고 옷의 무늬가 자연스럽고 유창하다.이동굴의 조각방법은 북위시기의 웅장하고 튼튼함을 계승하고 수나라시기의 활발함을 개척했기 때문에 과도기의 작품으로 추측됐다.동굴안에 많이 남은 비문이 연구자들에게 진귀한 문자자료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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